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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동문회장 한상경박사 인터뷰-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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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07-13 15:55 조회1,88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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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꽃나무들이 피어나는 건 작년부터 이미 준비된 것…"
저마다 해를 향해 뻗어 고목의 그늘 아래에서 어린 나무는 못 자라
내가 해를 바라보는 동안 내 뒤에도 그늘이 생겨

어떤 이는 봄은 동사(動詞) ‘보다’에서 나왔다고 했다. 어원적인 근거는 불확실하나, 현실에서는 맞다. 좀 더 엄밀하게 하면 봄은 보이는 것이다.

경기도 가평군 ‘아침고요수목원’ 설립자 한상경(61)씨도 이에 동의했다.

“봄은 노란색으로 찾아온다. 겨울이 다 지나가기 전인 2월 말 노르스름한 풍년화가 핀다. 너무 작아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안 보인다. 3월 산기슭에는 노란 복수초가 핀다. 언뜻 민들레와 닮았다. 생강나무에도 동글동글 노란 꽃이 피어난다. 산수유는 생강나무보다 일주일쯤 늦게 핀다. 노란 물결이 사라져 갈 즈음 복숭아·살구·진달래 등 분홍 꽃들이 핀다. 흰 꽃들은 좀 늦다. 주로 5월쯤에야 핀다.”



▲ 한상경씨는“낙엽이 진 뒤부터 봄에 새잎이 나오기 전에 나무를 심는 게 좋다”고 말했다./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15년 전 그가 이 수목원을 열었을 때, 한 신문기사는 '깊은 산 속 비밀의 정원이 있다'는 제목을 달았다. 그날 현충일이었는데, 이 산속으로 600명이 몰려왔다고 한다. 이제는 연 80만명이 찾는다. 사설 수목원으로서는 입장객 수가 가장 많다. 이 수목원에는 4500종의 꽃과 나무들이 있다.

―봄날에 물이 오른다는 것은 사실적 표현인가?

"뿌리에서 끌어올린 수액이 꽃가지마다 퍼지는 것이다. 추운 겨울에는 수액이 흐르면 식물의 몸체가 얼어붙는다. 봄이 올 때까지 식물도 '동면'하듯 활동을 멈춘다."

―해마다 반복되는 꽃나무의 개화(開花)를 보면 무얼 느끼나?

"지금 눈앞의 꽃들은 그 전해부터 이미 준비된 것이다. 꽃들이 피어나는 것은 작년 가을 꽃눈을 만들어 저장해 놓았기 때문이다. 전년도 나무의 영양 상태에 따라 다음해의 꽃과 열매가 결정된다."

당초 그의 꿈은 과수원을 일구며 농촌계몽운동을 하는 것이었다. 그는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휴가를 나왔을 때부터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나무가 자라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대학을 졸업해서 나무를 심으면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내일을 꿈꾸는 사람은 오늘부터 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꽃을 심는 마음과 나무를 심는 마음은 약간 다르다. 자기가 머무르는 곳을 자기 땅으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 주인의 마음이 아닌 사람, 셋방살이 인생은 나무를 심지 않는다."

―아파트에 사는 도시인도 그렇지만, 나무마다 심을 때가 있는가?

"나무가 생장을 멈추고 쉬고 있을 때 옮겨심는 것이 좋다. 늦가을 낙엽이 진 뒤부터 봄에 새잎이 나오기 전이다. 이 기간 중에도 겨울보다 봄에 심으면 추위를 피할 수 있어 생존율이 높다. 지역에 따라 3월 중순부터 4월 초가 적기다."

―생육(生育)이 왕성한 여름철에는 안 되는가?

"나무는 지상부(잎·가지)와 지하부(뿌리)가 서로 공생한다. 위에서는 광합성을 하고, 뿌리는 토양에서 수액을 빨아들이며 지상부를 지탱해주는 것이다. 나무를 옮겨 심으면 뿌리가 손상되게 마련이다. 지상부를 먹여 살릴 만큼의 물과 양분을 공급하는 데 어려움이 발생한다. 여름철에는 잎과 가지들이 번성해 그런 불균형이 더 심해진다. 이때 옮겨 심으면 나무가 쉽게 말라죽을 수 있다."

―어떻게 심으면 나무가 잘 자라는가?

"뿌리는 최대한 보존하고 가지들은 잘라줘야 한다. 균형이 중요하다. 태풍 등으로 한번 쓰러진 나무는 금방 다시 세워놓아도 살지 못한다. 뿌리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당나라의 문사 유종원(柳宗元)이 쓴 '종수곽탁타전(種樹郭�s駝傳)'에는 나무 잘 심는 노인의 비법이 나온다. '내가 나무를 잘 자라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나무의 천성을 잘 따라 그 성질을 이루게 할 따름이다. 무릇 나무의 성질은 그 뿌리는 펴고자 하고 그 북돋기는 편편하고자 한다. 그 흙은 옛것을, 그 다지기는 조밀한 것을 좋아한다. 심고는 집적거리지 말며, 염려하지도 말고, 떠나면 다시 돌아보지 않는다.' 이를 인간 교육에 대한 메시지로 유종원은 받아들였다.

"나무나 사람이나 성장해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데 긴 세월을 필요로 한다. 어쩌면 사람을 기르는 교육은 나무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인지 모른다."

그는 원예학과 교수 출신이다. 졸업 후 당초 꿈대로 농촌으로 내려갔다. 그런 그를 대학총장이 불렀다. '교육사업을 위해 평생 몸바칠 마음이 되어 있느냐?' 교수직을 권했다. 따로 친분이 없었는데 왜 자신을 택했는지 몰랐다.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는 인생의 길이 있고 목표가 있습니다.' '교육은 너 자신의 이상을 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실현시킬 수 있다.' 그 말이 그의 행로를 바꾸었다. 그는 20대 후반부터 강단에 섰다.

"내 강의 주제는 '흙으로 돌아가자'였다. '여러분의 갈 길은 취직이 아니다. 여러분이 살아야 할 땅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고. 그렇게 몇 년간 목청 높여 강의했으나 학생들은 농촌으로 안 내려갔다. 흙은 시나 음악에서만 아름다운 것일 뿐이다. 좌절감이 심했다. 해마다 봄이면 나는 향수병에 걸려 몸부림쳤다. 그러다가 이 길을 택한 것이다. 비록 젊었을 때 꿈꾼 농촌운동은 아니었지만."

마흔살 중반에 그는 '한국 정원'을 만들어보겠다고 마음먹었다. 산·계곡·논두렁·밭두렁·소나무 등 곡선미와 비대칭의 균형을 살린 정원을 꿈꿨다. 미국서 연수하던 중 '부처드가든'(캐나다 빅토리아섬 소재)을 본 것이 계기가 됐다. 1994년 대학을 떠나 외진 산기슭으로 가족을 데리고 와 꽃과 나무들을 심기 시작했다.

―수목 중에 어떤 놈은 잘살고 어떤 놈은 왜 까다로운가?

"수종에 따라 기후와 토양 적응 능력에 차이가 있다. 대나무·히말라야시다·황금사철나무 등은 추위에 약한 편이다. 반면 소나무·향나무·무궁화·목련 등은 잘 살아남는다. 꽃사과나무를 수목원에 심었는데 산성 토양에서 대부분 병에 걸려 죽었다."


―나무도 생물(生物)이니 늙고 병들고 죽는다. 나무의 평균 수명은?

"우리 수목원의 '천년향'이라는 향나무는 800여년 됐다. 양평 용문사의 은행나무도 1200여년 살았다. 수종에 따라 수명을 결정하는 유전자 형질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세콰이어나무나 호주의 바오밥나무도 1000년 이상 산다. 느티나무는 500~600년 산다. 평균적으로 나무들은 사람 수명만큼이나 그 이상 산다. 이에 비해 수양버들, 가죽나무 등은 50~60년밖에 못 산다. 나무도 늙으면 세포의 재생능력이 떨어지고 상처에 약해지는 건 마찬가지다."

―의식이 없고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을 흔히 '식물인간'으로 비유하는데, 이는 정당한가?

"식물은 한 발짝도 못 옮겨가도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태양을 향해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 아래로는 물을 끌어올리고 탄소동화작용을 하고 꽃을 피운다. 게다가 벌과 나비, 사람들을 자신에게로 다가오게 하는 능력을 갖추었다."

―식물에도 정신세계가 있는가?

"그건 잘 모르겠다."

―어떤 음악을 들려주느냐에 따라 식물의 자라는 모습이 다르다는 실험도 있었다.

"어떤 분의 부탁으로 음악 종류에 따른 풀꽃들의 반응 실험을 해봤다. 예비실험 결과로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는 조심스러웠다. 다른 요인이 작용한 것일 수도 있다. 그분에게 방대한 샘플로 다시 검증해보라고 했는데, 그냥 논문을 써버리더라."

―식물은 '생존 전략'을 세워 자신에게 붙어 있는 불필요한 가지를 스스로 죽여버린다는데.

"울창한 숲에서 나무의 아랫가지는 세월이 지나면 죽게 된다. 죽였는지 죽었는지는 몰라도. 나무는 해를 향해 위로 올라가려고 한다. 그늘에 놓이면 생명을 유지하기 어렵다. 큰 고목 곁에서 어린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이유다. 나는 나무를 보면서 '내가 태양을 바라보는 동안 내 뒤에는 그늘이 생기겠구나' 하는 걸 느낀다. 어쩌면 인간도 존재하는 그 이유만으로 주위에 '그늘'을 만들 수 있겠구나 하는 것이다."

―듬성듬성 있으면 고목의 그늘이 문제될 게 없을 텐데.

"어떨 때는 우리 사는 세상이 그런 빽빽한 숲이 된다. 그러니 혼자 태양을 바라보는 동안에도 너무 행복해하지 말고 주변을 잘 돌아보라고 내게 타이른다."

―나무가 해를 향해 높이 올라가려는 것은 생존 본능이다. 거기에 무슨 도덕·가치가 끼어들겠는가.

"어느 해 가을 상수리나무에서 도토리가 툭 떨어지는 걸 봤다. 불쑥 '왜 열매는 대부분 둥글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떨어져서 자신의 본체로부터 멀리 굴러가려고 하는 것이다. 고목 곁에는 그 그늘로 인해 어린 나무가 자라지 못해 스스로 살려는 것이다."

그는 당초 대기업을 설득해 수목원을 지을 생각도 했다. 꿈이 퇴색될까 두려웠다. 결국 자신의 힘으로 하게 된 것이다. 무모한 결정임을 깨닫는 데는 오래 안 걸렸다.

시골 과수원부터 팔고 살고 있는 집도 처분했다. 집이 없으니 서울서 학교에 다니는 자녀까지 이끌고 산기슭으로 들어왔다. 사방에 빚을 내 쏟아부어도 흔적이 없었다. 돈이 떨어질 때마다 배가 아픈 증세가 생겼다. 암에 걸렸구나.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면 이상이 없었다. 돈이 떨어지면 또 격심한 통증이 오고, 네 번이나 병원을 찾았다.

"어린 시절 고향에서 강물을 헤엄쳐 건너다가 죽을 것만 같았다. 뒤를 돌아보니 온 거리가 너무 멀었다. 앞으로 더 헤엄칠 수밖에 없었다. 살길이 없어 몸부림쳤는데 딱 그런 기분이었다. 요즘 수목원은 부동산 투자나 현금 사업처럼 됐다. 그런 계획을 품고 여길 찾는 남자들도 꽤 있다. '몇 평이냐' '수목이 모두 몇 종이냐' '저 나무는 굉장히 비싸겠다'고 내게 묻는다. 아주 신물 나는 질문이다. 나무를 심어온 내게는 별로 관심이 없는 분야다. 난 이렇게 답한다. '땅이 넓으면 잡초가 많이 난다. 잡초가 많으면 번뇌가 많아진다'라고."

―당신은 늙은 고목과 신생(新生)의 나무 중 어느 쪽을 좋아하나?

"살아온 세월이 배어 있는 나무를 좋아한다. 고목(古木)의 굽은 몸통과 가지는 어느 해 쏟아진 폭설과 거센 바람에도 안 부러지려고 온갖 애를 쓴 흔적인 것이다. 비록 휘었을지언정 중심을 잃지 않고 하늘을 보면서 끝까지 가는 나무를 보면 아름다움을 느낀다. 풍상의 세월 속에서도 주어진 삶의 짐을 지고 묵묵히 제 길을 가는 성숙된 사람의 모습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별생각 없이 살다가도, 문득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서 '욕심과 집착을 버려야 한다'고 깨닫기도 한다.

"숲에서는 해마다 삶과 죽음의 주기(週期)를 보게 된다. 요즘 같은 봄에는 신생의 기운을 느끼지만, 가을 단풍이 마지막을 불태우고 어느 날 찬서리가 내린다. 인생이 그런 것이 아닌가. 아무리 좋은 영화(榮華)라도 끝이 있다는 것이다."

―낙엽은 떨어져도 가지에 눈을 남긴다. 새로운 생명을 잉태시키고 가지 않는가.

"그건 맞다. 이 봄날에 꽃나무들이 피어나는 게 그런 이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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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고요수목원 원장 한상경씨를 만나 그가 생각하는 한국적 정원에 대해 들어봤다./이재호기자 superj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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